우리집안은 대대로 소작 일을 하면서 호랑이와 곰을 사냥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 포수집안이다. 본래 우리집안이 살던 곳은 함경도였다. 거기서 사냥과 화전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동양척식회사에서 이곳에 대한 토지조사를 해야 한다면서 이래저래 둘러보고 가더니 며칠 뒤에 냅다 이제부턴 자기들 땅이라면서 농사를 못 짓게 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 산짐승들도 일본인들이 싹 쓸어 가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먹고 살게 없어지게 되자 나는 무작정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간단한 살림거리 좀 챙겨가지고서 만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15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장성한 아들은 내 뒤를 이어 포수가 되었고 나도 아내와 농사를 지으면서도 틈틈이 시간이 나면 아들과 함께 사냥을 나가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날도 아들과 사냥을 나갔다 마을로 돌아왔는데 집은 잿더미로 변했고 곳곳에 마을 사람들의 목이 잘린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우리부자는 이 끔찍한 광경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고 그렇게 잠시 멍하게 있다가 아내를 행방을 찾기 위해 잿더미와 시체들이 즐비한 마을 구석구석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근처 산 속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내가 나를 와락 안겨서는 펑펑 울었다. 잠시 진정을 시키고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는데. 산나물을 캐기 위해 산에 있다가 비명소리와 탕!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산에서 내려왔더니 일본군이 나타나 마을에 불을 지르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보고선 혼비백산 하여 다시 뒷산으로 올라가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자신을 찾던 우리부자의 목소리를 듣고 난 후에야 안심을 하고 산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가족은 시체더미에서 혹시라도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이 있는지 여기저기 헤집고 찾아다닌다. 한참을 찾았을까..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들리는 곳으로 가보니 불에 홀라당 타버린 촌장의 집과 촌장을 비롯한 여러 구의 시신들 속에 촌장의 손자가 울고 있었다.
나는 이 가엾은 아이를 안고 가족들과 함께 일단 마을을 벗어나기로 한다. 일본 놈들이 내 고향도 뺏어가더니 이젠 삶의 터전과 소중한 이웃들마저도 빼앗아 가버렸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일본인들....
일단 산기슭에 밤의 추위를 막을 굴을 파놓고 나뭇가지와 시든 나뭇잎을 모아다. 불을 피운다. 다행히도 우리가족은 아내가 캔 산나물과 나와 아들이 사냥한 짐승들이 있어 식량이 부족한 건 아니다. 다만 몸뚱이만 남은 이 알거지 네 사람을 받아 줄 때가 생각이 나지 않아 막막하다.
“아버지 마침 생각이 나는 게 있습니다.”
아들이 입을 연다.
“어디 생각나는 곳이 있더냐?”
“작년 이맘 때 쯤에 이 근처에서 사냥을 하다 길을 잃어 하루 종일 헤맨 적이 있었는데, 마침 동굴이 보이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일단 동이 틀 때까지 저기서 잠시 추위를 녹이고 가자는 생각에 들어가 보니 사람이 파놓은 듯한 동굴이었습니다. 식량과 이부자리 들이 있었고 한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자들이 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일단 거기로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일단 아들의 말을 믿고 네 식구가 그 동굴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간다. 봄이 왔건만 산기슭까지 봄이 오진 않았나 보다. 여전히 춥다. 그렇게 추위를 견뎌가며 걸어가다 보니...
“아버지! 여기에요 여기.”
아들이 손으로 바로 앞에 있는 동굴을 가리킨다. 동굴 안의 모습은 아들이 말한 그대로였다.
온갖 먹을 것이며 불도 피울 수 있게 도구들도 갖춰져 있었다. 혹시라도 사람은 없다 확인을 한다. 그러자 저 멀리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들어보니 사람이 꽤 많아 보인다.
일단 상자들이 잔뜩 쌓여진 곳으로 네 식구 모두 몸을 숨긴다. 잠시 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대장님, 여기 사람이 온 흔적이 보이는 뎁쇼?”
“그래?”
“혹시 일본군들이 여길 찾아낸 게 아닐까요?”
“대충 보아하니 아직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겠어, 이봐, 삼식이 너댓놈 데리고 가서 근처에 일본군들이 있는지 찾아보게.”
“네 대장님.”
긴장되는 순간이다.
‘뿍!’
아뿔싸... 나도 모르게 방귀가 나오고야 말았다. 우린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다.
“웬놈이냐!”
“사...사..사..살려줍쇼 저흰그저 오갈데 없는 거렁뱅이라 잠시 하룻밤 머물 곳을 찾고 있었소.”
나와 식구들은 넙죽 엎드리며 벌벌 떤다.
“조선사람 이요?”
무리들 중 하나가 우리식구들의 생김새나 행색을 보고는 조선사람인걸 직감했다.
“네... 그렇습니다요 원래 함경도 사람입니다.”
“오 반갑소 나도 함경도 사람이요”
무리의 대장이 자신과 나의 고향이 같다는 걸 알고선 무척 반색을 한다.
“근데 여기는 어디고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오?”
궁금했던 아들이 무리의 대장에게 물어본다.
“여긴 우리의 비밀기지요 우린 독립군이올시다. 여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 일본군들을 물리칠 작전도 짜고 하는 곳이요.”
독립군... 말로만 듣던 독립군을 만났다. 잘되었다는 생각에 그간 나와 식구들이 하루사이에 펼쳐졌던 끔찍한 일들을 이야기 해줬다. 대장과 독립군들의 얼굴빛이 붉어진다.
“이 천인공노할 놈들!”
대장이 이를 악물고 분노한다.
“저두 제 아들과 함께 이곳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고 싶소이다. 내 삶의 터전과 이웃들을 없애버린 일본인들을 때려잡고 싶소.”
“좋소 때마침 포수생활을 하셨다고 하니 총은 다룰줄 알겠군요. 내일부터 저희와 함께 하십시다.”
그렇게 나와 아들은 독립군이 되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을 쯤 드디어 일본넘 들을 물리칠 기회가 찾아왔다.
“대장~ 지금 일본군들이 이곳을 지나기 위해 오고 있습니다.”
“병력은 어느정도 되느냐?”
“대략 눈대중으로 보았을 때 2천명 정도로 보입니다.”
“그래? 알겠다. 모두 들으라! 내가 적군의 행렬에 폭탄을 던지면 그것이 신호다 일제히 사격하도록! 모두 각자 매복할 위치로 가라”
“넵!”
나와 아들 그리고 모든 독립군대원들의 대답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산기슭에 매복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군들이 지나가기 시작한다. 이 철천지원수들... 내가 이 순간이 올 때 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제 폭탄만 터지기만 하면 된다.
‘펑!’
일본군 부대의 중앙으로 폭탄이 떨어진다. 신호가 온 것이다. 일본군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탕! 탕! 탕! 탕!’
그간의 분노가 담긴 나의 총알이 불꽃을 튀면서 일본군을 향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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